inspired by : Writes and writes-not
폴 그레이엄의 Writes and writes-not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.
AI가 이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. 글쓰기에 대한 압박이 거의 사라졌다. 학교에서도, 직장에서도 AI에게 대신 써달라고 하면 된다.
그 결과는 ‘글을 쓰는 사람(writes)’과 ‘글을 못 쓰는 사람(write-nots)’으로 나뉘는 세상이 될 것이다. 여전히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다. 어떤 사람들은 글쓰기를 좋아한다. 하지만 잘 쓰는 사람, 그럭저럭 쓰는 사람, 아예 못 쓰는 사람이 존재하던 예전의 중간지대는 사라질 것이다. 이제는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만 남는다.
GPT가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던 때부터 GPT를 사용했고, 처음 유료 버젼을 출시했을 때부터 정기 결제를 했던 사람이라, 이런 흐름에 대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. 그 때는 이 정도로 글을 잘 쓰지는 않았으니까, 글을 쓰는 작업이 ‘거의 완전히’ 대체된다는 것에는 약간의 회의감이 있었다. 완전 초창기 때 나같은 비개발 영역의 사람들은 GPT를 어떻게 쓸지를 몰랐고, 이런 툴에 전혀 익숙하지도 않았다. 그래서 일단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는지, 대본을 쓰거나 간단한 심심풀이용 앱을 만드는 등 놀의의 영역에서 활용하곤 했는데, 그때 GPT와 번갈아가면서 릴레이 형식으로 소설을 쓰는 작업을 했었다.
일단 타이핑하는 시간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내용을 완성하기 전에 내가 지쳐버리고 말았지만, 그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. 속도는 빨랐지만 내용은 클리셰 범벅이었기 때문이다. 결국 소설은 항상 ‘어디선가 본 것 같은’ 방식으로 진행되고는 했다. 그 어느 사람도 흥미롭게 읽지 않을 것만 같은.
그런데 요즘은 일단 AI툴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더 소수인 것 같은 느낌이고, 심지어 수많은 글들이 실제로 AI에 의해서 작성되고 있다. 최근 IT 관련 글을 읽기 위해 모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글을 몇 개 읽다 보니 사람이 작성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. 어차피 AI로 생성한 글이라면 내가 왜 이 블로그에서 정보를 찾고 있지? 그리고 AI로 생성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, 외국의 좋은 콘텐츠들을 AI로 자동 번역 및 업로드하는 블로그도 많이 보았다. 앞으로는 직접 타이핑한 글을 등록하는 사람이 더 줄어들 것임은 특별할 것도 없는 예상이다.
그래서 폴 그레이엄의 에세이가 와닿는 것 같다. 지금까지는 글을 쓰는 것이 1이고, 쓰지 않는 것이 0이라고 한다면 0.1이나 0.003, 0.9도 존재하는 세계였다고 한다면, 앞으로는 점점 더 0 아니면 1로 수렴해 갈 것 같다. 제목만 쓰면 몇 초만에 그럴듯한 글을 써주고, 심지어 요즘에는 할루시네이션도 많이 줄어들었다. 도대체 누가 번거롭게 직접 글을 쓸 것인가? 이에 대해서도 이 짧은 에세이에서 언급하고 있다.
글쓰기는 곧 사고다. 사실 어떤 종류의 사고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. 이 점을 레슬리 램포트(Leslie Lamport)는 더 잘 표현했다: “글 없이 사고하고 있다면, 당신은 단지 사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.”
직접 글을 쓰는 일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, 대신 진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낸다. 우리는 AI를 통해 수많은 자료를 만들어내면서 마치 내가 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는 않는가? 마치 내가 AI를 시켜서 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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